패닉 3집 <Sea Within> 이후 5년 만이다. 이적의 솔로 앨범 <Dead End> 이후로는 4년만이고, 김진표의 세 번째 솔로 앨범 <JP3> 이후 2년만이다. 여기에 보태 이적과 김진표의 각자 밴드 생활 -- 긱스와 노바소닉까지 거론하면 또한 몇 년만이다. “패닉”이라고 묶여 불리는 두 가수가 같은 시기에 음악 활동을 재개한 것은.

 이적의 솔로 앨범 <2적>과 김진표 솔로 앨범 <JP4>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패닉 팬으로서는 두 배의 기쁨이다. 패닉의 3집 <Sea Within>이 벌써 5년 전의 일이건만, 공식 해체 선언도 없는 상황에서 패닉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은 언제나 아쉬움이었다. 더욱이 이적과 김진표가 각기 다른 그룹에 멤버로 참여하면서 둘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지극히 낮기만 했다. 따라서 둘이 개인 활동을 재개했다는 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패닉 4집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이적과 김진표가 다시 패닉의 이름 아래 뭉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둘은 이번 앨범들을 통해 그동안 각자의 영역에서 무섭고도 빠르게 성장한 면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따로 발전한 뒤 모여서 함께 빚을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공익근무 요원으로 28개월을 꼬박 재충전기로 삼아야 했던 이적의 <2적>은, 창작자에게 넉넉한 재충전 기간이 왜 필요하며, 팬들에게는 왜 그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작품이다. 여전히 이적다운 음악이건만, 앨범 전체에 흐르는 음의 깊이와 여유는 그의 음악이 한층 더 성숙하고 발전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독특한 색깔의 보컬이 폭발력까지 구비하면서 훨씬 매력적인 가창력을 뽐내는 점도 <2적>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점이다. 이적도 <2적>이라는 앨범 제목이 자신의 음악 인생 2기를 열어보인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지만, 그야말로 이 앨범은 새로운 이적 음악의 한 시대을 화려하게 열어보인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는 대중적 코드에 맞춘 이 앨범의 소위 ‘미는 곡’이다. 전작 앨범의 ‘Rain’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발라드 트랙이지만, ‘Rain'에 비해서는 한층 깊어진 이적의 음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대중적 호응을 일정정도 받을 것임에는 분명하나, 전체 앨범에서 이 트랙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노래가 형편없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노래들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이적의 홈페이지 인트로 화면에 깔아두었던 드럼 비트에 다양한 ‘소리’들을 혼재해 놓은  몽상적(夢想笛)’은 이 앨범의 인상적인 인트로 곡이다. 이적은 경쾌하게 질주하는 드럼 비트 소리 뒤로 외화 더빙 소리며 안숙선의 적벽가, 크라잉 넛의 ‘신기한 노래’ 등의 ‘잡음’들을 다양하게 녹여내며 그야말로 꿈꾸는 느낌, 몽상적(夢想的)인 느낌을 전해준다. 이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꿈과 실재가 뒤섞인 영화 <오픈유어아이즈>와 같이 몽롱한 느낌에 젖어들게 하고 나아가 그에 흠뻑 취하게 만든다. 음악의 몽환적인 느낌에 정신마저 혼미해져 마치 꿈길을 내쳐 달리는 기분에 도취되는 순간, 꿈에서 깰 때가 그러하듯 빠른 바람 소리와 함께 두 번째 트랙으로 빨려 나가듯 빠져나가게 된다. 짧고 강한 꿈이 그렇듯, '몽상적'의 여운은 짙다.

 '몽상적'의 여운을 받은 두 번째 트랙 ‘하늘을 달리다’는, 패닉 시절의 경쾌한 리듬감을 연상케 하는 기분 좋은 모던 록이다. 단순한 사랑 노래로 읽힐 수 있는 노래이지만, 이적의 감각 있는 가사로 인해 이 노래의 빛은 한껏 독특하게 유지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늘을 달리는 기분을 유지하게 해주는 신나는 비트와 멜로디, 그리고 멋진 노래 가사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이 노래는 이 앨범의 가장 매력적인 트랙 중 하나에 꼽힌다.

 자우림의 여성보컬 김윤아와 함께 부른 ‘어느 날’의 매력은 ‘하늘을 달리다’가 전해주는 매력과는 정 반대의 지점에 위치한다. ‘하늘을 달리다’가 경쾌함과 밝음으로 어우러져 있다면 ‘어느 날’은 눅눅하고 어둑어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적속에서의 시계 초침 소리와 같은 피아노 건반음과 피 내음인 듯 비릿한 소리가 지나가면, 목이 조여 눌린 남자의 묵직하게 죽어가는 목소리가 지난 날을 읊조린다. 돌려 감는 소리와 함께, 같은 순간, 그 남자를 죽이고 만 여자의 피묻은 회상이 또한 눅눅하게 전해진다. 노래의 비트에선 느리지만 마치 목을 조여오는 듯한 압도적인 힘이 느껴지고, 사랑으로 인해 죽고 죽이는 남녀의 집착과 체념 섞인 목소리는, 마치 영화 <감각의 제국>을 보는 듯 머리를 쭈뼛거리게 만든다. 특히 종반부에서의 김윤아의 넋나간 듯한 허밍음과, 이적의 무표정하고 메마른 목소리는 마치 이 비극적인 현장에 직접 초대된 듯한 느낌을 전해 주기까지 한다. '어느 날'은 소름이 끼치도록 아름답고 잔인한 노래다.

 <2적>을 무엇보다도 이적의 앨범답게 만드는 트랙은 ‘장난감 전쟁’과 ‘서쪽 숲’이 될 것이다. ‘장난감 전쟁’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비판적으로 그린 반전 노래다. 1집에서 남북 문제를 언급한 ‘지구 위에서’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이적은, ‘장난감 전쟁’에서도 같은 톤의 음색과 문제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적은 자신의 무력함을 개탄하는 듯 힘없고 건조한 역설적 목소리로 이 전쟁을 “즐거운 장난감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담담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지만, 순간순간 미처 자신의 분노와 증오심을 억제하지 못한채 불쑥 드러내기도 한다. 점차 이 전쟁을 즐기는 이들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조금씩 표면위로 드러내다가 이적은 결국 힘없는 개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라도 하듯, 신의 구원과 신의 저주를 찾는 공허한 절규로 노래를 마무리한다. 신에게밖에 의지할 데가 없다는 사실이 더없이 서글프게 느껴지게 만든다.

 서쪽 숲’에서는 그 동안 이적의 노래들에서 면면히 이어져 오던 ‘비주류의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서쪽‘은 동쪽이나 남쪽처럼 양지로 인식되지 않는, 어딘가 어둡고 불온한 방위를 대표한다. 그것은 ’왼손잡이‘의 왼쪽처럼 주류로부터 외면되고 배척받는 방향이다. 그리고 여기서 “어머니”가 일러주었으나 끝내 가지 못하고 다짐만 거듭하게 되는 그 서쪽의 ’숲‘은, ’달팽이‘ 등의 노래에서 마침내 도달하고자 했던 이적 자신의 이상향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서쪽 숲‘에서 재차 강조된 이러한 ’비주류의 이상향‘이, 어떤 상황이나 상태를 이르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불온하게 여겨지는 어떤 사상적 지향점이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 규정짓는 것 자체가 폭넓게 의미 설정한 이 노래의 원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 앨범에서 유난히 놀라웠던 점은 이적의 가창력이었다. 보컬의 색깔이 뚜렷하긴 했지만, 사실 이적의 가창력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못했다. 불안하다는 평도 많았고, 소위 일컬어지는 “노래 잘하는 가수”는 분명히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앨범의 ‘그림자’나 ‘순례자’와 같은 트랙에서는 그러한 세간의 평가가 이제는 재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펑키한 재즈 리듬의 ‘그림자’는 음악 색깔에 맞춘 이적의 샤우팅 창법으로 노래의 맛을 더했고, ‘순례자’에서 이적은 깊고 넓고 높은 울림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이제 누구도 감히 이적에게 가창력의 문제를 거론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로앨범을 이적보다 두장이나 더 발매한 김진표의 4집은, 그가 패닉 데뷔당시의 그 멋모르던 아이였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원숙하다. 사실 너무 원숙해진 듯 한 것은 또한 이 앨범에서 드는 불편함이기도 한데, 어쨌든 벌써 김진표가 이 만큼이나 컸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김진표 개인을 위해서도, 또 이적의 자극을 높이는 데에서도, 패닉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런 점에서 <JP4>는 우선 높이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타이틀 곡인 ‘악으로’는 이전 앨범까지 김진표가 달콤한 사랑 노래를 타이틀로 삼아왔던 점을 생각해 보면 다소 의외이다. 하지만 일단 들어보면, 귀에 쏙 끌리는 매력적인 멜로디와 래핑이 이 곡을 타이틀로 정한 이유를 대신해 줄 것이다. 김진표의 트레이드 마크이다시피한 한국어 각운을 적절히 살림과 동시에 이제는 부러 억지로 말을 끼워 맞추지 않아도 될 만큼 랩 가사에 여유를 갖추게 된 점도, 부쩍 발전된 김진표의 모습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트랙의 매력은 도전적인 래핑과 가사 내용의 적절한 조화라고 할 만 하다. 김진표에게서 더러 묻어나는 느끼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장점이겠다.

 아직 못다한 이야기’, ‘유난히’, ‘시간이 필요해’, ‘스물다섯’, ‘너의 생일에’ 등은 예의 그 달콤한 사랑 노래들이다. 각각 BMK, 신예원, 박정현, As One, Ash 등이 보컬로 참여해 여성 가수들의 감미로운 보컬과 김진표의 다정하고 느끼한(!) 래핑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예쁜 사랑 노래를 완성하고 있다. ‘아직 못다한 이야기’는 김진표 본인이 밝혔듯이, ‘악으로’가 아니었으면 타이틀곡으로 삼아도 손색없을만한 트랙이기도 하다. "내게 불어오는 바람아, 너는 내 얘기를 어서 그녀에게 전해주렴"으로 시작하는 노래 종반부의 랩은 이번 앨범의 랩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랩 파트였다.

 3집에서의 ‘350초 미친년 추격전’과 같이 펑키한 느낌을 주는 ‘뺑끼 구락부’는 여성 래퍼 T의 참여로 래핑의 리듬감이 한결 더 두드러져 신이 나는 트랙이 되어 주었고, 하림의 보컬과 함께한 ‘환호성’은 ‘악으로’의 분위기를 끌어오는 한편 중량감 있는 랩이 매력적인 곡이며, ‘천국을 꿈꾸며’는 시간을 정지시켜놓은 듯한 정적인 분위기에서 읊조려지는 랩의 진정성이 마음을 울려준다.

팝과 힙합의 혼재로 산만하기 그지 없던 전작 3집에 비해 <JP4>의 경우 전반적으로 앨범 구성의 유기적인 면과 안정성은 정착이 되었으나, 그 바람에 앨범의 기조가 팝으로 일방적으로 흐른 면이 다소 아쉬운 점이다. 김진표의 도발적인 목소리가 상당부분 거세되었고 지나치게 따뜻함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런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조PD가 함께한 ‘시부렁’은, 그 성질이 상당히 누그러졌기는 했으나 세상을 향한 김진표 발언의 맥을 이어주고 있다. 이 트랙은 하나의 트랙만으로 사회 제현상을 일괄적으로 처리하고 말겠다는 욕심을 부리듯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의 문제를 짚어내며 시부렁대고 있다.

 오롤롤롤로’는 대단히 유쾌한 트랙이다. 귀에 익은 단순한 멜로디와 “가위내 주먹내 모두 가위바위보”로 이어지는 후렴 랩 파트는 쉽고 재미가 있어 노래를 듣다 보면 절로 따라하게끔 된다. 이어지는 ‘에필로그’는 ‘오롤롤롤로’의 멜로디 위에 앨범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한마디씩을 실어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데, 한 사람 한사람의 덕담과 인사는 음악과 어우러져서 그 자체가 하나의 랩이 되어 주기도 한다. 재밌는 발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기획이었던 점에서도 이 ‘에필로그’는 앨범의 유쾌 상쾌한 기조를 끝까지 깔끔하게 유지하고 있다.

 김진표가 래핑으로 참여한 <2적>의 마지막 트랙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는 패닉의 4집 가능성을 높여주는 트랙으로서도 주목이 된다. 모처럼 입을 맞춰보았던 둘의 호흡에서는,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데 따른 높은 자신감이 드러나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한결 높아진 음악적 수준을 확인케 한다. <2적>과 <JP4>는 오랫동안 패닉의 음악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모처럼의 청량감을 주는 선물이었지만, 동시에 더욱 패닉의 네 번째 앨범을 갈구하게 만들기도 한다. 언젠가 다시 들려줄 둘의 하모니가 자못 기대된다.

the best track: 하늘을 달리다, 악으로
EMI, T Entertainment.

 다른 <만끽!>

check01_black.gif Shame on you,
America!

check01_black.gif 잊고 싶은 기억
잊을 수 없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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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the12th에 대하여 문화 즐기기 편지 써주시게요?
에구~ 고마워라~ ^^ 개인적인 혹은 공유적인 주장과 의견 예전의 글들 게시판 생활이야기 만화